정부가 연금개혁을 위한 행보를 본격화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작업에 나섰고, 기획재정부는 연금개혁 논의에 대응하기 위해 부처 내 자율기구로 ‘연금보건경제과’를 설치했다. 지난 6일부터는 공석이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김태현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취임,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13일 뉴스1과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위한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를 구성, 본격적인 재정추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재정수지를 계산해 연금보험료 조정 및 기금운용계획 등이 포함된 국민연금 운영 전반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국민연금법 4조에 따라 매 5년마다 실시한다.
이번 5차 재정계산에서는 연기금 적자 전환 및 고갈 시점에 대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연금개혁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재정계산위원회에서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재정계산위원회 산하에 재정추계와 기금운용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담당할 2개 전문위원회도 운영한다.
위원회는 이달 열릴 2차 회의부터 본격적인 재정추계를 위한 변수 및 추계모형 등의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다. 결과는 내년 3월쯤 나온다.
복지부는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된 만큼 국회 차원의 추진상황을 고려해 재정추계 및 제도개선 논의 일정 등도 조정해 나갈 계획이다.
기재부는 연금개혁 논의에 대응하기 위해 부처 내 자율기구로 '연금보건경제과'를 설치한다.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과 단위 조직을 설치·운영할 수 있게 한 '장관 자율기구제'활용 첫 사례다. 기재부는 이를 위해 지난달 31일 '자율기구 연금보건경제과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훈령을 제정했다.
해당과는 경제구조개혁국 아래에 두며, 연금·보험 제도 및 보건의료 정책 관련 소관 사무에 책임있고 신속하게 대응해 그 성과 창출을 뒷받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장관 자율기구제에 따라 설치된 과인 만큼 설치목적이 달성되면 즉시 폐지하고, 최대 운영 기간은 최초 설치일로부터 6개월이로 연장은 1회만 가능하다.
연금보건경제과는 △경제구조 변화에 대응한 연금관련 정책 협의·조정 △연금제도의 경제·금융 부문 영향에 대한 조사·분석 △경제·금융·재정부문 관련 보건의료분야 사회보험정책 협의·조정 △의료복지 관련 정책 협의·조정 등을 맡는다.
새로 짜여 질 국민연금 개혁은 보험료를 더 내는 모수개혁 방식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위해 꾸려진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위원장에 보험료율 인상을 주장해 온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임명됐다는 점에서 이 같은 논리에 설득력을 더한다.
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 달 30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구성과 관련, 11명의 전문위원 인선을 완료했는데 전 선임연구위원을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전문위 구성은 전 위원장을 비롯해 근로자·사용자·지역가입자·전문가 단체가 추천한 전문가 8명, 정부위원 2명 등으로 꾸려졌다.
전 위원장은 그동안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 보험료를 더 내는 방식의 모수개혁을 주장해 온 대표적 인물이다. 모수개혁은 기존 연금제도의 틀은 유지하면서 재정안정화를 위한 세부 방안을 활용해 제도를 손질하는 방식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연금보험료율 인상 △소득대체율 축소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등 직접 관련 수치를 변경하는 방식이 주로 거론된다.
이런 방안 중에서도 전 위원장은 보험료율 인상을 주장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보험료 인상 없는 수입·급여 조정을 통해서는 국민연금 재정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며 "보험료 인상을 중심으로 수급 연령 상향, 물가지수 적용 조정, 급여 산식 조정 등을 함께 활용해 수급자들이 수용 가능한 정책 조합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두 차례 국민연금 개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이 같은 방식이 차용됐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지난 1998년의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소득대체율(40년 가입기준)을 70%에서 60%로 하향하고, 만 60세였던 연금 수급연령을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상향해 2033년이 되면 만 65세에 도달하게 했다. 또 2007년에는 법률 개정을 통해 2008년에 소득대체율을 40년 가입 기준 60%에서 50%로 즉시 10%p 낮춘 후, 2009년부터 20년간 매년 0.5%p씩 점진적으로 낮춰 2028년에 이르면 40%가 되도록 했다.
국민연금 고갈을 대비한 보험료율 인상 등의 모수개혁 작업은 정부 주도로 추진된다. 기금 고갈 현실화가 당면 현안인 데다 현행 연금제도의 전체 틀 내에서 보험료 인상 등 세부 사안을 조정하는 식으로 이뤄지는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
문제는 전체 틀을 바꾸는 구조개혁이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검토·논의되는 방식은 국민연금과 직역연금(공무원·군인·사학연금)을 통합하는 방식인데 정부는 이 작업은 국회 몫으로 넘겼다.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의 통합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시절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이미 공무원·군인·사학 연금의 경우 보험료보다 연금 지출액이 더 많아 적자를 국민 세금으로 메우고 있어, 지급액 기준을 국민연금과 동일하게 맞추자는 주장이었다.
지난 5일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낸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4대 공적연금 의무지출은 국민연금 36조2287억원, 공무원연금 22조6980억원, 사학연금 4조9185억원, 군인연금 3조8463억원 등 총 67조6915억원이다.
이는 2024년 73조3057억원, 2025년 80조2840억원, 2026년 85조82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넣는 연금보다 지출 규모가 커지면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내년 적자 규모는 8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다.
공무원연금은 올해 3조730억원 적자에 이어 내년 4조6927억원으로 적자폭을 키울 것으로 예상됐다. 적자 규모는 2024년 5조6013억원, 2025년 7조3267억원, 2026년 8조212억원으로 불어난다.
군인연금 적자 규모는 올해 2조9076억원에서 내년 3조789억원, 2026년 3조8674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 직역연금에 내년에만 26조5000억원이 넘는 돈이 의무지출로 나가고, 이로 인한 적자 규모만 약 8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다.
국회입법조사처 원시연 입법조사관은 "연금개혁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 책임과 부담을 조율하는 불가피한 조치임에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고 인기없는 대표적인 이슈"라며 "정부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다양한 입장차만 확인한 채 결국 좌초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진전없는 소모적인 논쟁의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연금개혁이 모수개혁을 넘어 구조개혁단계까지 도달하려면, 개별 연금제도 관련 실태와 현황에 대한 정밀한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며 "전체 틀을 아우르기 위한 연금개혁 거버넌스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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